이야기

어떤 나라의 독재자 이야기

드래곤21c 2014. 11. 29. 18:53

"해마다 수만명이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1932년 4월 4일

무능력한 기존 정당에 지친 독일국민들이

한 남자를 보기 위해 베를린에 운집했다.

 

 

 

 

 

 

 

 

 

 

 

 

 

 

이 남자는 진심으로

분노하는 듯 보였다.

 

 

국민들 또한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패전국에게는 빵도 자유도 없었다.

 

화폐는 가치가 없어져서

땔감과 벽지로 사용되었다.

 

 

 

 

 

 

 

취업난은 심각했고

루저들을 양산하는 사회였고

 

부자와 서민의 격차가 심각했다.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풍자

 

다만

 어디로 분노해야 하는가?

 

히틀러는 그들을 대신해 분노해준 것이다.

 

 

 

히틀러는 분명 기괴하고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하는 말은 국민들의 마음깊이 침투했다.

 

히틀러는 대중을 다룰 줄 알았고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악수했다.

 

 

 

 

 

 

그것이 진심이던 아니던

암울한 현실에 지쳐있는 국민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히틀러는 '공감'을 구사했다.

히틀러 자신도

독일사회의 패배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이상한 남자를

깍아내리고 무시했다.

 

 

 

 

 

히틀러는 청년들을 포섭했고

곧 청년이 될 소년을 눈여겨봤다.

 

 

가혹한 실업난과 생활고

출구없는 어둠속에서

패배감으로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름다운 아리아인에 대해서도.

 

 

 

 

 

 

내 몸에 흐르는 피와 외모에 대해

아름다움을 늘어놓는데 누군들 달콤하지 않을까.

 

정작 그가

자신과 닮지 않았음에는 개의치 않았다.

 

 

 

 

 

 

 

예비역 군인들과 양아치, 실업자들은

SA대원이 되었다.

 

 

 

 

이들의 주된 역활은

사회의 혼란을 유발시키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 더 나아가서 반동분자

혹은 그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폭력, 방화, 살인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회적 혼란은

오직 히틀러만이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

나치의 전략이였고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나치는

대중을 휘어잡을 줄 알았고

방송을 이용할 줄 알았다.

 

방법은 다양했다.

라디오, 신문, 포스터, 영화, 책, 비행기.....

 

그 중심에는 선전부장 괴벨스가 있었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나치의 대중선동전문가

'히틀러의 입' 괴벨스

 

 

"빨갱이들로부터 여러분들을 보호해주겠습니다."

"유대인들 때문에 독일이 망합니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데

공동의 적이 존재하는 것만큼 강력한 것은 없었다.

 

히틀러의 최대라이벌은 공산당이였다.

괴벨스는 그것을 '공포'로 끌어올린다.

 

일단 세뇌된 대중들은

맹목적으로 따르고 투표했다.

 

 

 

 

 

 

히틀러는 독일 총리가 되고

국가주요기관 곳곳에 낙하산 인사를 앉힌다.

 

또한 나치가 모든 것을 장악한것처럼 보이지 않기위해

권력의 허수아비들을 세워두었다.

대통령또한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

 

 

 

 

 

 

유대인은 결정해야만 했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이 선택은 수년후에 목숨과 직결되었다.

 

 

 

 

부유한 유대인들은

재산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간신히 이민을 갈 수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수용소로 보내졌고

노조는 탄압받았다.

 

 

 

 

SA대원들의 규모는 이제 40만으로 성장했고

자체적으로 보급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폭력을 제지할 장치가 없었고

그 중심에는 히틀러가 있었다.

 

 

 

 

무기력한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래에 남기보다는

 

완장을 차고 소속감을 느끼며,

그들만의 제스쳐를 공유하며

왜곡된 뜨거움을 발산하는

SA대원이 되기로 결정한지도 모르겠다

 

 

 

 

 

후에 이들은 SS친위대에 의해 숙청된다.

 

 

 

SS무장친위대 포스터

 

 

현대인들의 시선으로는

대중들의 비이성적인 동조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당시 독일 사회는 절망적이였고

베르사이유 조약의 패배감속에서

 

자신도 몰랐던 우월성과 희망찬 미래를 말하는 히틀러에게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국토 곳곳에

도로를 깔고

건물을 짓고

삽질을 하자

 

 

 

 

침체되어 있던

독일경제가 살아나는 것처럼 보이자

 국민들은 더더욱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히틀러가 쓴 책 나의투쟁은

바이블이 되었다.

모든 교과서는 국가가 정한다.

 

학교에서는 책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나의 투쟁을 제외하고.

 

 

 

 

 

이제 모든건

나치가 장악했다.

 

 

 

 

 

 

 

 

 

 

 

 

 

 

 

 

그리고 5년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국민을 다스리는 데는 빵과 서커스면 된다.

-아돌프 히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