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왔구나
다시 들녘에 눈 내리고
옛날이었는데
저 눈발처럼 늙어가겠다고
그랬었는데
강을 건넜다는 것을 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길에 눈 내리고 궂은 비 뿌리지 않았을까
한해가 저물고 이루는 황혼의 나날
내 사랑도 그렇게 흘러갔다는 것을 안다
안녕 내 사랑, 부디 잘 있어라
- 먼 강물의 편지 / 박남준
내가 온통 흐느끼는 나뭇가지 끝에서
다가갈 곳 다한 바람처럼 정처 없어할 때
너는 내게 몇 구절의 햇빛으로 읽혀진다
가슴 두드리는 그리움들도
묵은 기억들이 살아와 울자고 청하는 눈물도
눈에 어려
몇 구절 햇빛으로 읽혀진다
불 꺼진 하얀 네 손바닥
햇빛 속에서 자꾸 나를 부르는 손짓
우리가 만나 햇빛 위를 떠오르는 어지러움이 된다면
우리가 서로 꼭 껴안고서 물방울이 된다면
정처 없는 발자국 위에도
꽃이 피어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리
- 불 꺼진 하얀 네 손바닥 / 장석남
당신이 어두우시면 저도 어두워요 당신이 밝으시면 저도 밝아요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있든 내게 당신은 닿아 있으니까요 힘 내시어요 나는 힘 없지만 내 사랑은 힘 있으리라 믿어요 내 귀한 당신께 햇살 가득하시길 당신 발걸음 힘차고 날래시길 빌어드려요 그러면서 그러시면서 언제나 당신 따르는 별 하나 있는 줄 생각해 내시어 가끔가끔 하늘 쳐다보시어요 거기 나는 까만 하늘에 그냥 깜박거릴게요 - 별 하나 / 김용택 |
아, 저 여인은 횃불에게 더 밝게 타는 법을 가르치고 있구나.
- 로미오와 줄리엣 中 / 윌리엄 셰익스피어
당신과 함께한 익숙한 거리들을
혼자서 조용히 되밟아 봅니다
맞잡던 두 손은 외로이 남겨지고
꽉찼던 가슴은 점점 비어가요
그대 그리운 모습 눈가에 고이고
그대 미소가 내 입가를 따라 번지고
당신이 건네던 습관 같던 말들을
혼자서 조용히 따라해 봅니다
- 이별을 걸으며 中 / 헤르쯔 아날로그
새는 뼈가 순하여
날개만 펼쳐도 쏜살같이 날아가지만
때로는 세찬 바람 앞에 저항하기도 한다
날개 관절이 뜨겁게 달구어져
더 날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새는 꺽꺽 울음을 쏟아낸다
혀를 입천장에 바짝 올려붙여
울음의 울림을 제 몸에 심으며
그 울음의 힘으로 십 리를 날아간다
- 울음의 힘 / 김충규
내가 먼저 빠졌다
만만하게 봤는데
목숨보다 깊었다
어차피 수영금지구역이었다
어설프게 손 내밀다
그도 빠진 건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서로 나가기 위해서
발목을 잡아당겼다
나는 안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부서지는 고통을
우리는 익사할 것이다
바닥에 즐비한
다른 연인들처럼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먼저 빠졌다
- 물귀신 / 전윤호
너를 잊는 일 눈물 참는 일
쉽진 않겠지만
울면서도 웃는다 돌아볼까봐
그저 웃는다 못난 내가 될까봐
그렇게라도 너의 기억에
좋은 남자로 남고 싶어
잘가 사랑아 행복해야 해
좋은 사람아 너를 잊지 않을게
- 안녕 사랑아 中 / 박효신
별 하나 뜨면 오신다더니
별 둘이 뜨면 꼭 오신다더니
풀벌레 우는 소리만 들리네
개울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네
별 하나 뜨고 별 둘이 떠도
임은 안오시고 바람소리만
바람소리만 들리네
별 셋이 뜨기전까지 꼭 오신다더니
왜 안오시나요
밤하늘 가득 별빛이네요
혼자만 별빛에 젖긴 싫어 어서 돌아오셔요
- 별 하나 / 전봉건
사랑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든다.
우리들은 다만 그것이 사라져가는 것을 볼 뿐이다.
- 오스틴 돕슨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 별에 못을 박다 / 류시화
난 너의 상처야 너의 눈물이야
긴 시간이 흘렀어도 결국
깊은 상처로만 남게 될 남자
고마워요 고마워요
나를 떠나가던 그 슬픈 순간마저도
그대는 따뜻했어요
그댄 내 전부야 나의 단 하나야
이 가슴이 찢어져도 절대
그댄 바뀔 수가 없는 내 운명
사랑해요 사랑해요
그대 생각만 해도 나는 너무 행복해
눈물이 흘러 나와요
- 안녕히 계시죠 中 / 휘성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 낼 수 없는
-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저녁에 / 김광섭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바람의 말 / 마종기
가라고 가라고 소리쳐 보냈더니
꺼이꺼이 울며 가더니
한밤중 당신은 창가에 와서 웁니다.
창가 후박나무 잎새를 치고
포석을 치고
담벼락을 치고 울더니
창을 열면 창턱을 뛰어 넘어
온몸을 적십니다
- 비 /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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